도서소개
현역 작가의 초기 드로잉을 총망라, 그림으로 보는 작가와 작품의 연대기
도시와 사회, 역사적 풍경, 신화와 인간원형을 추적해온 화가 서용선이 창작 인생 30여 년을 회고하는 작가 연대기를 펴냈다. 자신의 초기작품 중 드로잉만을 총망라해 전시하면서 작품의 배경을 개인적 사회적 시대적 맥락에서 술회한 이 책은 그림 500여 점과 글 400매로 구성되었다. 작가의 30대 전반을 이루는 1983년~1986년의 작품을 연도별로 정리하면서 그와 관련된 회상적 작가일기를 곁들였다. 여기에는 내밀한 개인사와 더불어 작품 구상의 심리적 환경적 배경과 그가 속한 화단과 사회 일각의 풍경이 담겨있다. 그림이라는 작품과 글이라는 회상을 통한 예술가의 연대기는 서구에서는 보편화되어 있으나, 한국의 미술계에서는 처음 보는 것이다.
1980년대의 이 시기는 서용선이 작가로서 발돋움하는 초기였으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몇몇 주요 테마가 분출하고 형성되는 중요 시기였다. 이 시기는 또한 한국사회가 하나의 분수령을 넘는 때로서 중요한 사건과 현상이 연속되며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개인의 삶과 사회의 변동과 예술의 형성이라는 삼각 꼭짓점이 이루어내는 작가의 한 시절이 갖는 독특한 색채를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시선을 교직하여 묘사하기 위해 서용선은 저널리스트 작가 박윤석과의 공조를 통해 객관적인 시점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이 책을 완성했다.
밑그림이나 스케치의 기능을 넘어서 작가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정수로서의 드로잉이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독립 장르로서 새로운 위상을 얻어가는 근래의 추세에 비추어, 관록의 작가의 초기 창작을 날것 그대로의 즉발적인 드로잉 작품을 통해 30년의 시공간을 훌쩍 넘어 들여다 보는 경험은 한 세대 전의 젊은 예술가의 일기장을 펼치는 흥미와 아울러 그 배면을 이루는 당시 우리 사회의 초상을 들여다 보는 감흥을 줄 것이다.
오래된 일기장이며 작가노트이자 작가와 작품의 연대기라 할 이 책은 개인사와 사회사이자 작품사의 세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하겠다. 이는 곧 도시인의 자화상에 대한 천착을 기반으로 사회적 역사적 상상력을 극점까지 추구에 들어가고 있는 한 작가의 생의 이면과 작품 배경의 일단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이는 또한 서양미술을 한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며 재창조하는 데 천착해온 작가가 스스로의 작품 세계를 중간 결산하는 사회적 보고서라고도 하겠다.
그림으로 말하는 1980년대
거센 바람과 파도에 이름 모를 배 몇 척이 출렁인다. 저곳은 어디인가, 저들은 누구인가. 그림에 만약 임진왜란이란 제목이 없다면 그것이 1592년 명량의 해상인지 아니면 2014년의 진도 앞 바다인지 분간할 길 없다. 그림이란 종종 이처럼 보편적이다. 마치 바다와 풍랑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보편적이듯이.
이 책 표지의 그림은 작가 서용선이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84년에 거의 실물 크기의 종이 위에 연필로 그린 것이다. 당시 서용선은 서울대 미대 대학원의 서양화과를 졸업한 시간강사였다. 작가의 길로 막 들어서 몇몇 단체전에는 참여하고 있었지만 그림은 한점도 팔아보지 못한 때였다. 그 시대는 그의 은사 교수들도 작품을 팔기 어려운 때였다. 화랑이라고 해야 인사동에 두어 군데 있을 뿐, 그림을 사는 사람도 그림을 구경할 곳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컬러 텔레비전이 방영되고 프로야구가 개막한 지 불과 몇 년 안쪽이었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입에 담기 위태로울 정도로 불온한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이후 30년 사이에 모든 것은 일변하여 경제와 정치와 문화는 호황을 구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넘치는 과잉 생산과 소비의 세상에서 그림은 어느덧 값비싼 물건이 되고 미술은 고급하면서도 대중적인, 일견 야누스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예술이자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30년 전의 서용선과 그 시대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서용선은 이제 30년 전을 돌아보며 이 책을 낸다. 수장고 속에 잠자고 있던 스케치북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나이든 종이 그림을 한장 한 장 들추어가며 동생의 힘을 빌어 조명을 비추어 사진을 찍고 컴퓨터의 웹하드에 올려 종이에 인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로 이 책이 탄생했다. 30년을 넘는 세월 중 불과 일부 기간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이 책에는 임진왜란과 같은 드로잉 오백 점이 가득 들어있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그려낸 작품들을 빠짐없이 한데 모았다. 그의 나이 서른 두 살에서 서른 다섯까지의 시기다. 작가 경력 30년을 훌쩍 넘긴 중견 화가의 초창기 드로잉의 총결산이다.
캔버스의 원화는 따로 있고, 여기에 모인 것들은 어디까지나 드로잉 작품들이다. 생각을 끌어내는 밑그림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완성작일수도 있는 드로잉을 위주로 한 작품집이다. 드로잉의 속성이 그러하듯 캔버스 그림으로 완성되어 재탄생할 날을 기다리는 것도 있고, 아직 완성인지 미완성인지 모르게 언제일지 알길 없는 때를 기다리며 있는 그림들도 있다. 그리고 그 자체로 더 이상의 손길이 가지 않을 것이 분명한 완성작으로서의 드로잉도 허다하다. 드로잉이 그 자체로서 갖는 작품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의 추세에 화단의 주목을 끌기에 족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꺼내어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이다.그래서 이 책은 작가 개인의 일기장이자 작품의 연대기로서, 30여년에 걸친 작가 인생을 중간 결산하는 의미에서 내어놓는 일종의 예술적· 사회적 보고서라 할 수 있겠다.
목차
1장 : 프롤로그 _ 젊은 예술가의 초상
2장 : 1983년 _ 세상 속으로
3장 : 1984년 _ 작가의 길
4장 : 1985년 _ 사회적, 역사적 상상
5장 : 1986년 _ 강원도의 힘
부록 : 도판 색인
저자소개
<저자 소개>
박윤석(작가, 저널리스트)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20년 일했다. 이후 '현대를 이루는 바탕으로서의 근대'에 대해 연구, 집필하면서, 건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한국 근대와 근대 신문에 관하여 강의했고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동아시아 근현대와 한국문학에 대하여 강의했다. 서용선 작가가 22년에 걸친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떠나 창작에 전념한 이후부터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그의 작품과 일상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져왔다. 저서로 '경성모던타임스-1920, 조선의 거리를 걷다'가 있다.
<작가 소개>
서용선
화가 서용선은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아리, 정릉 등 서울 변두리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대학 진학도 못한 채 입대하여 군 하사로 군복무를 한 후, 스물 다섯 나이에 뒤늦게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하여 그림에 입문했다. 대학원 서양학과를 졸업한 후인 1986년부터 모교에서 교수로 활동해 왔으나 접고 2008년부터는 그림 그리기에 전념하고 있다.
그가 화단에 데뷔한 것은 1978년에 개최된 제1회 <중앙미술대상전>과 제9회 <한국미술대상전>에 극사실적 경향의 작품들을 출품하면서였다. 하지만 우리 화단에 그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 <소나무> 연작들을 통해서이다. 그 이후 그는 <도시 사람들>이나 도시풍경 그림, <노산군 일기>나 6.25 한국전쟁 같은 민족사의 비극들을 주제로 한 일련의 연작들을 지속해 왔으며 최근에는 철암그리기 같은 미술공동체 운동, 지리산, 태백산 풍경화, 신화그리기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 일반의 삶의 세계 전반으로까지 관심의 폭이 넓게 번져 있다.
1988년,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그는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중국, 미국, 호주,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무려 이번까지 포함하여 52회에 이르는 크고 작은 개인전들을 개최했으며, 까뉴회화제, 광주국제비엔날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비롯한 다양한 국내외 기획전들에 초대되어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최근 10여 년 동안은 뮤지엄급 전시들, 예컨대 일민미술관의 <미래의 기억>전(2004), 국립현대미술관의 <2009 올해의 작가>전(2009), 박수근미술관의 <미래의 기억>전(2009), 고려대학교박물관이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기억, 재현, 서용선과 6.25>전(2013), 독일 학술교류처(DAAD) 초대 개인전(2013), 지난 봄에 열린 아트센터 White Block의 <역사적 상상-서용선의 단종실록>(2014) 등 규모가 큰 여러 초대 개인전들로 바빴다.
올해 2014년에는 자신의 성장 체험을 바탕으로 민족, 더 나아가 인간 일반의 삶의 현실과 존재론적 조건이나 근원을 묻는 작업들에 몰입해 온 공적으로, 이번 달 2014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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